[美관세 위법판결] 불확실성 장기화…한국 경제엔 '양날의 칼' 3천500억달러 대미투자에도 변수 되나…속도조절 지렛대 여지도 정부, 美 후속관세 지켜보며 신중 대응…관세환급엔 범정부 지원책 모색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불확실성이 장기화 경로에 접어들면서 우리 경제에도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국가별로 차등세율을 부과하는 상호관세가 미국 연방대법원의 위법 판결로 무효가 되면서 '관세 폭주'에 제동이 걸린 것 자체는 일단 청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그렇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곧바로 10% '글로벌 관세' 부과에 서명한 데다가, 품목별 관세도 부과될 수 있다는 점에서 되레 리스크가 연장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연방대법원이 관세 자체보다는 절차법 정당성을 문제시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련 절차법을 준수하는 선에서 2탄·3탄 관세카드를 내놓을 가능성은 열려있는 셈이다. 우리 산업계와 외환·금융시장에 상당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3천500억 달러의 대미투자 이행에도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호재로 비칠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호재와 악재가 교차하는 대혼선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트럼프 관세정책의 향배를 섣불리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로서는 섣불리 액션을 취하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 상호관세 가고 기본관세 오고…품목별 관세 우려 2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거시경제 측면에서 주요 관전 포인트는 한국경제의 성장 엔진 격인 수출 전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여부다. 한국의 경우 미국과 관세합의에 따라 최초 25%로 책정됐던 상호관세가 작년 11월부터 15%로 인하됐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한국 국회의 대미투자특별법안 처리 지연을 이유로 자동차 관세와 함께 상호관세를 25%로 재인상하겠다고 위협했다. 이런 '25% 관세' 위협이 사라지는 대신 10%의 글로벌관세가 부과되면 외견상으로는 관세율이 크게 인하되는 모양새가 된다. 15% 상호관세 대비로는 5%포인트 인하다. 문제는 '품목별 관세'를 어떤 시점에 어느 수위에서 꺼내느냐에 달렸다. 우리의 주력 수출제품들은 대체로 품목별 관세의 사정권에 있다는 점에서, 품목관세와 상호관세의 손익계산서를 예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만약 품목별 관세 국면으로 넘어간다면 우리로서는 관세가 높아질 수 있고, 상호관세보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기업들로서도 불확실성이 커지게 된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새롭게 적용된 체제에 맞게 움직여왔는데, 또다시 다른 체제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상황 자체가 부담"이라며 "무역정책의 또 다른 불확실성이 제기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용준 경희대 무역학과 교수는 "이제 어떤 법조항으로 어떤 품목에 어떤 관세를 매길지에 대한 불확실성도 커진 것"이라며 "섣불리 영향을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대미투자 패키지' 일단 진행…속도조절 여지도 트럼프 행정부의 이행 압박을 받아왔던 '대미 투자합의'에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지도 주목되는 지점이다. 한국 정부로부터 3천500억 달러의 투자 '약속'을 끌어낸 상호관세가 종료됐다는 점에서 법논리적으로는 대미투자 합의도 무효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상호관세 자체가 무효가 된 상황에서 당장 무역 합의를 기존대로 유지하는 것은 우리로서도 불공정하다는 논리가 부각될 수 있다. 다만, 우리 정부가 먼저 재협상을 요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대미 투자합의가 오랜 협상을 거쳐 체결된 데다, 조선업이나 핵추진 잠수함을 비롯한 다른 전략적 합의와도 맞물려 있다는 점도 고려할 대목이다. 이 때문에 관련 절차는 당초 일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대미투자특별위원회는 예정대로 오는 24일 입법공청회를 개최하고 특별법 제정에 들어갈 예정이다. 특위 활동 기한은 다음 달 9일까지로, 여야는 5일 본회의를 열어 특별법을 처리한다는 구상이다. 일본 움직임도 고려할 변수다. 일본 정부는 5천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합의대로 이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일본 언론들은 보도했다. 김광석 실장은 "상호관세율을 깎는 조건으로, 대미 투자를 약속했던 나라들이 그 당위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간의 약속들이 조정될 여지도 있어 보인다"며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품목별 관세 등 다른 수단으로 압박할 것이라고 본다면 무역협상이 바뀌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의 유동성이 커진 만큼 탄력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장용준 교수는 "투자는 우리 기업에 이득이 돼야 이뤄지는 것이고,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 같은 경우에도 우리 기업쪽이 이득으로 판단해 주도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며 "시장의 이득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속도조절을 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 정부, 美후속책 주시…관세환급에도 촉각 정부는 미국측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대응수위를 조절한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이번 판결로 '관세 리스크'가 사라진 것보다는 트럼프 행정부가 새로운 대체 카드를 꺼내려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점에서다. 무엇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보다 강경한 관세정책을 꺼내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글로벌 관세 10%와 별도의 품목별 관세도 매길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로서는 향후 영향을 분석하기 쉽지 않다"며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관계부처 차원에서도 기민하게 동향을 점검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전날 주요 1급 및 소관 국·과장들이 참석한 긴급회의를 개최하고 "미국내 동향과 주요국 대응 상황을 철저히 파악해달라"고 당부했다. 통상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부도 자체 대책회의를 진행한 데 이어 오는 23일에는 김정관 장관 주재로 국내 업종별 영향 점검 및 대응 전략 논의를 위한 민·관 합동 대책 회의를 개최한다. 관세 환급도 또 다른 과제다. 미 대법원 판결로 관세 납부자들이 환급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주무 부처인 세관국경보호국(CBP)이 세부 환급 절차를 마련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 실제 환급까지 상당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중소벤처기업부, 산업통상부, 관세청 등을 중심으로 경제단체·협회 등과 논의해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지원 방안을 모색해 나갈 방침이다. 기본적으로는 미국의 수입업자가 CBP에 환급을 청구하게 되지만, 우리 수출업자가 수입업자를 대신해 관세를 납부하는 무역결제인 DDP(관세지급인도조건) 조건 또는 미국 현지법인을 통한 관세납부 등에는 환급신청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관세청에 따르면 관세부과 대상 물품을 미국에 수출한 기업은 2만4천여 곳이며 이중 6천여 개 기업이 DDP 조건으로 수출했다. 이와 별도로 관세청은 전국 세관의 수출입기업지원센터를 통해 미국 환급 관련 정보를 기업별로 개별 제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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