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불거진 관세 불확실성…트럼프 임기 내내 반복 우려 김정관-러트닉 이틀 연속 워싱턴 담판에도 결론 없이 '빈손' 기업들 사업계획 '고심'…트럼프식 압박술에 한미 통상 리스크 구조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 투자 속도를 문제 삼아 일방적으로 관세 인상을 예고하면서 한미 통상 환경이 또다시 짙은 안갯속에 빠졌다. 정부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을 미국에 급파해 긴급 진화에 나섰으나 아직 뚜렷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해 관세와 관련한 불확실성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1일 산업부에 따르면 김 장관은 지난달 29∼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상무부 청사를 찾아 카운터파트인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이틀 연속 담판을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김 장관은 이 자리에서 한미 간 기존 관세 합의를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는 정부 입장을 강조하면서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대미투자특별법)이 신속히 제정되도록 국회와 긴밀히 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장관은 지난달 3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과 만나 "지금 특별법안이 국회에서 계속 계류 중이다 보니, (미국 측이) 굉장히 아쉬워하는 부분들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비록 결론을 내지는 못했지만 한국 측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다며 한미 간 불필요한 오해가 해소됐다고 덧붙였다. 대미투자특별법 입법 전에라도 투자 속도를 내기 위해 프로젝트에 대한 예비검토 계획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김 장관은 "따로 특별하게 지침을 받은 건 없다"며 "좀 더 상의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달 28일 기자간담회에서 특별법 통과 이전이라도 투자 프로젝트에 대한 예비검토를 거치는 등 사전 준비를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보겠다고 말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개인 SNS를 통해 한국산 자동차·목재·의약품 등에 적용되는 품목관세와 기타 상호관세를 무역 합의 이전 수준인 25%로 다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국회가 대미 투자 약속 이행에 필요한 특별법을 승인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지만 정작 한미 양국은 특별법 입법 시한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합의한 바가 없다. 양국 정상 간 이뤄진 관세 합의는 아랑곳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관세 위협에 우리 정부는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는 "내가 펜만 한번 놀리면 수십억 달러(수조원)가 미국으로 들어올 것"이라며 관세를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사실 그간 너무 친절했다"며 미국이 각국에 물리는 관세가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인상을 압박한 배경으로 미국 연방대법원이 조만간 상호관세의 적법성에 대해 판단할 가능성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상호관세 부과의 법적 기반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압박을 통해 성과를 서둘러 확보하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관세 불확실성이 이어질 경우 가장 큰 부담은 기업에 돌아간다. 업계 관계자는 "작년에도 관세가 오르내릴 때 몇몇 기업들은 생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해야 할지 말지 깊이 고민해야 했다"며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연간 사업계획 추진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부터 반년 넘게 관세 25%의 직격탄을 맞았던 현대차그룹의 경우 미국 시장에서 가격 인상을 자제하며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이 관계자는 "미국은 경쟁이 매우 치열한 시장이라 관세 부담이 완화되면 프로모션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여지가 생긴다"며 "하지만 관세가 언제, 어떤 수준에서 정리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이런 전략도 쉽게 구체화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통상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관세 위협이 '뉴노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를 일회성 조치가 아니라 상시적인 협상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투자 업종 선정이나 투자집행 속도를 이유로 유사한 압박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일본·대만은 유럽연합(EU)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처럼 집단적 협상력을 갖추지 못한 채 미국의 일방주의와 양자주의에 노출돼 있다"며 "트럼프 입장에서는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할 때 상대적으로 압박이 용이한 국가들을 대상으로 강경 메시지를 내놓을 유인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 대미 투자 집행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갈등 가능성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허 교수는 "한국은 환율 안정이라는 제약 속에서 연간 200억달러 상한의 대미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미국은 빠른 투자를 요구하는 반면, 한국은 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하므로 투자 프로젝트가 실제로 진행되는 단계에서는 이해 충돌이 지금보다 더 빈번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기업 모두 관세 리스크를 '상수'로 받아들이고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부는 장관급 셔틀 외교와 실무 협의를 통해 미국의 불만을 사전에 관리하고, 기업들은 북미에서 현지 공급망 비중을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고부가가치 및 차별화 제품 위주로 수출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장관은 이후에도 화상 회의 등을 통해 러트닉 장관과 협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김 장관은 "내부 토론을 거치고 조만간에 한국에서 화상 회의를 할 예정"이라며 "그런 과정들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어떻게 결론이 나올지 한번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오는 5일까지 워싱턴에 머물며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과 관세 문제를 비롯한 한미 통상 현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런 통상 환경은 트럼프 임기 내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관세 압박을 일시적 위기가 아니라 일상적인 리스크로 보고 대응 전략을 세우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코인리더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