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이자 허용?…월가 vs 코인업계 격돌 월가 "코인 거래소가 사실상 은행 역할 뱅크런 대혼란 막아야" 주장 가상화폐 업계 "금융계 경쟁 두려워해 시장 선택 맡겨야" 맞서
스테이블코인 '이자' 지급 문제를 두고 미국 월가와 가상화폐 업계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가 스테이블코인 보유자에게 수익을 제공할 경우 사실상 은행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어서 금융 안전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대형 은행들은 주장한다. 이에 맞서 가상화폐 업계는 이자 지급 금지가 오히려 금융 혁신을 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은행들이 경쟁을 피하고자 억지 주장을 편다고 반박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일(현지시간) '스테이블코인 전쟁'이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에서 이번 이자 논쟁이 미국 금융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의 안착 여부를 판가름할 변수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갈등의 출발점은 작년 7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법안인 '지니어스법'이다. 지니어스법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사용자에게 이자를 주는 것을 금지했지만, 가상화폐 거래소에도 이자 지급 금지가 적용되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규정을 두지 않았다. 이 때문에 JP모건체이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월가 주요 은행은 스테이블코인 규제에 '제도상 허점'이 있다며 추가 법제화를 통해 스테이블코인 이자 지급을 완전히 봉쇄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현재 미 상원에서 계류 중인 '클레러티 법안'(The CLARITY Act)은 이 논쟁의 한복판에 있다. 이 법안은 미국 디지털 산업 전반의 규칙을 정할 전망이다.
◇ "뱅크런 위험" vs "경쟁에 맡겨야" 미국의 코인 거래소는 스테이블코인 보유자에게 3∼5%대의 수익(리워드)을 지급하는데, 시중 은행의 입출금 예금 이자는 통상 0.1%도 안 된다. 이 때문에 코인 거래소의 이자를 계속 허용하면 고객들이 은행에서 돈을 빼 거래소에 맡기는 '뱅크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은행들의 주장이다. JP모건의 제레미 바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FT와의 인터뷰에서 "가상화폐 기업이 기존의 은행과 비슷하게 이자를 지급하면서도 은행권에 적용되는 건전성 규제는 전혀 받지 않고 있다"며 "이는 명백히 위험하고 절대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즉 가상화폐 거래소가 사실상 '또 다른 은행'으로 행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재무부는 작년 4월 분석에서 코인 거래소가 이자를 계속 지급하면 6조6천억달러(약 9천600조원)의 은행 예금이 가상화폐 업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추산했다.
코인 업계는 결사 항전 태세다. 월가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뱅크런 위험을 과장하고 있고, 고객 이탈이 두려우면 시장 경쟁 원칙에 맞게 이자를 올리거나 스테이블코인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맞다는 논리다. 미국 최대 코인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의 브라이언 암스트롱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달 중순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 게시글에서 클레러티 법안을 성토하며 "나쁜 법안보다는 차라리 법안이 없는 게 낫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인 '서클'의 제레미 얼레어 CEO는 정부채 머니마켓펀드(MMF)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뱅크런 우려가 제기됐지만 실제 대규모 예금 유출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며 월가의 공세를 '완전히 어불성설'로 일축했다. 은행권과 가상화폐 업계 대표들은 이번 주 워싱턴에서 만나 이자 금지 규정에 대해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논의가 어느 편에 유리하게 흘러갈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월가의 대관 로비 역량은 역사적으로 적수가 없을 정도지만 가상화폐 기업들은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뒷배'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상화폐 산업 육성을 국정 기조로 내세우고 있는 데다,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이라는 스테이블코인 가족 회사도 갖고 있다.
◇ 금융질서에 도전하는 스테이블코인…"대체 못해" FT는 이 논쟁이 시장 경쟁 문제를 넘어 더 근원적 고민을 촉발할 공산이 크다고 짚었다. 스테이블코인 업체들에 유리하게 판이 짜이면 결과적으로 전통 금융권이 위축될 수 있고 대출과 유동성 공급이라는 핵심 금융 기능이 교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의 핀테크 전문가 그룹 의장을 역임한 필립 패치 영국 런던정경대(LSE) 교수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전체 금융 시스템의 유동성이 줄면 대출 비용이 인상될 수밖에 없다"며 "우리는 여전히 전통 금융 시스템의 자금 중개 기능에 의존하고 있고, 스테이블코인은 누군가에게 대출해줄 권한은 갖고 있지 않아 이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스테이블코인이 애초 이름처럼 '스테이블'(안정적)하지 않은 것도 논쟁거리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등 실물 자산에 연계된 가상화폐로 통상 발행사가 미국 국채 등 안전 자산을 준비금(reserve)으로 쌓아 화폐 가치를 보장한다. 발행사 준비금엔 부실화의 위험이 존재한다. 실제 2023년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했을 때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은 자사의 준비금 중 8%가 이 은행에 묶인 탓에 자사 코인인 USDC가 1대1 달러 가치를 못 지키는 '디페그'(de-peg) 위기를 겪었다. 이 문제는 미국 당국이 실리콘밸리은행의 구제에 나서면서 겨우 해결됐다.
스테이블코인이 금융 혁신 동력이 되기에는 애초 사용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가상화폐 사용자층이나 탈중앙금융(디파이금융) 업계 안에서 집중적으로 거래될 뿐 아직 사회 전반으로 널리 쓰이진 않는다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이 다른 가상화폐와 비교해 결제 기능이 더 낫지만, 페이팔 등 기존의 간편 결제 서비스와 비교해서는 별다른 차별점이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FT는 미국보다 더 빨리 2024년 말 스테이블코인을 법제화한 EU의 경우 애초 현지에서 간편 결제 서비스가 이미 널리 쓰였던 만큼 스테이블코인이 예상보다 많이 보급되지 않았고, 자금세탁 등 불법 영역에서 사용이 활발했다고 지적했다. EU는 코인 거래소의 이자 지급을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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